1577~1580년 사이에 광양현감을 지낸 정숙남(鄭淑男)이 최산두(崔山斗)와 박세후(朴世煦)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재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숙종 신미년(1691)에 사민(士民)이 중건하였다.
이후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1977년에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최산두(崔山斗, 1482~1536)는 조선 중종 때 기묘명현으로 홍문관과 사간원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지냈다.
박세후(朴世煦, 1493~1550)는 조선 중종때 기묘명현으로 홍문과 박사,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등을 거쳐 1528년에 광양현감에 임명되었다.
특히 광양현감으로 있을 때 학문을 장려하고 사마소(司馬所 : 생원과 진사들이 참여하는 향촌기구)를 건립하였다.
관련 유적으로는 1775년(영조51)에 건립된 신재선생유허비와 1828년(순조28)에 건립한 봉양사사적비 등이 있다.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신재로 110(광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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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수정일: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