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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읍 서쪽 24km 거리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본격적으로 개장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길이 1km, 폭 200m의 백사장이 반달 모양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200여 그루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길게 펼쳐져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심은 1~2m에 불과하고 물이 깨끗해서 호남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꼽힌다. 해수욕장의 앞쪽으로는 숱한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고, 그 바다 위로 한가로이 항해하는 어선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또한 칠산바다를 붉게물들이는 이 곳의 서해낙조는 동해일출과는 사뭇 다른 운치를 안겨준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뛰어난 해안 풍광을 자랑하는 백수해안관광도로, 바다낚시터로 유명한 돔배섬,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섬 7개가 일자형으로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칠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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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의 본고장 법성포에서 북서쪽 해안으로 9km를 달리면 계마항과 가마미해변에 닿는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계마항은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그리고 고깃배들이 그림엽서처럼 아름답게 바라다 보이는 항구이고 바로옆의 가마미 해변은 굴캐기를 즐길 수 있는 겨울바다이다. 가마미로 가려면 법성포를 지나야 한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굴비가게 앞에는 줄줄이 엮인 굴비들을 볼 수 있다. 굴비를 구입하기 전, 진짜 굴비와 그리고 이와 비슷한부세의 구별법을 미리 알면 좋다. 굴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다이아몬드형 굴곡이 생겨야만 진짜 조기이다. 부세는 꼬리지느러미와 몸통을 잇는 부분에 살이 적은 반면 조기는 살이 많다.
법성포를 지나 계마항에서 남서쪽 방향을 바라보면 작은 섬 여섯개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작은 섬들을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그리고 육산도 앞의 아주 작은여를 합해 칠산도라고 부른다.
칠산 앞바다의칠산은 이 일곱 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제 때는 여기서 잡히는 고급어종을 법성포를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날랐을 만큼 황금어장이다.
법성포에서 가마미해수욕장까지의 해안길은 드라이브코스로 인기를 끈다. 계마항은 가마미 해수욕장으로 가기 전 5백m 거리에 있다.
가마미와 계마 라는 지명은 예전 이 곳에 유배왔던 선비들과 연관이 있는데 가마미의 '가'는 멍에 '가'자라고 한다.' 마'는 말을 뜻하며 '미'는 꼬리이다. 이곳 해수욕장과 포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산의 지형이 꼭 멍에를 쓴 말의 꼬리처럼 생겼다는데서 가마미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계마항에서는 인근의 송이도, 안마도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오가고 50여척의 고깃배가 기항한다. 긴 방파제는 칠산 앞바다와 동중국해로 고기잡이 나가는 큰 배들을 접안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계마항이 사람들로 북적거릴때는 3월부터 10월 사이로, 인근의 섬들이 모두
바다낚시 하기에 좋은 곳이라 많은 낚시꾼들이 몰린다. 계마항 방파제와 계마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은 낙조를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다. 쥐섬, 괭이섬을 걸고 바라보는 석양 낙조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여름철이면 해수욕장으로 각광받는 가마미해변에, 겨울철에는 남쪽 바위지대에서 마을 사람들이 굴을 캐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썰물에 맞춰 삼삼오오 모여 들고 일반여행자들도 재미삼아 굴 캐기에나선다. 굴을 캐기 위한 도구는 주변에서 팔지 않으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마미해변 주차장 옆에는 노송 군락지가 있어 여름철에는 텐트촌으로 이용된다.
해변 앞에는 자그마한 돌섬이 떠 있고 북쪽에는 방파제도 들어서 있어 해변의 물결은 늘 잔잔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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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읍 계송리에 있는 계송서원은 1966년(병오) 향내유림의 발의로 하동 정간, 미산 정례손 등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현소재지에 사우를 창건하고, 처음 이를 도내사라 제액하여 제향해 오다가 후에 계송서원이라 개액하였다. 향사는 음력 춘 2월 20일, 추 8월 20일에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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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당시 북한군의 교회 탄압에 항거하며 신앙을 지키려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염산교회:77명, 야월교회: 65명)한 곳이다. 여기에 이르면 이름없이 사라져간 순교자들의 깊은 신앙심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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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에는 무시이군의 고록차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염해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임치현에 속했으며 진달이섬, 반월도, 대낙월도, 진원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반월도 국영목장을 설치 40필의 말을 방목한 기록이 있다. 1895년 지도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광군에 편입되었다. 현풍곽씨가 16세기 말경 처음으로 입도하여 14대째 살다가 1988년 모두 외지로 나갔다.
달이 지는 쪽에 있다하여 진달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낙월도가 되었다. 1895년 지도군에 편입되면서 윗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상낙월도라 부르게 되었다. 구비전승으로는 큰애기고랑, 농바위와 널바위등 설화와 노젓는 소리, 장모채비소리, 상여소리, 등당애타령 등의 민요가 내려온다. 산신제, 풍어제, 액맥이굿, 초분 등의 민간신앙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중단되었다.
이 지역에서 잡히는 새우와 꽃게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며 특히 새우젓은 한때 전국 생산량의 50%를 점유했었다. 1987년 셀마태풍으로 해선망어선(일명 멍텅구리)6척이 난파되면서 선원 24명이 익사하기도 하였다. 해선망어선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새우를 잡는 어선으로 이 섬의 주요 소득원이었으나 1995년 6월 정부의 어업구조 조정사업으로 모두 폐선되고 1척만이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 유물전시관 해변광장에 옛 유물로서 전시되고 있다.
*섬구성 : 본섬 1, 부속섬 2
*면적 : 9,769,144㎡(부속섬 포함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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